고3임을 핑계로, 조국의 땅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그냥 지나보낼 수는 없었다. 촉각으로 느끼고 싶었다.


강릉역. 수호랑과 반다비, 오륜 구조물을 만날 수 있었다. 오륜 구조물은 올라가고 매달릴 수 있게 설계되어 사람들의 장난을 받아주는 친근한 면모를 보였다.


수호랑의 오른발 받침대가 힘겨워 보였다.

우리 엄마는 전문 사진작가이다. 사람들의 부탁을 받아 단체사진을 찍어줄 때 직업 정신이 유감없이 나타난다.

'2018 평창 문화올림픽'의 일부가 된 '파이어아트 페스타 2018'은 미국 네바다 주의 'Burning Man'축제를 연상케 했다. 처음에는 오륜을 받쳐주기 위해 세워진 한 개의 나무 조각 작품으로 보았으나, Burning man의 사막위 늘어선 작품들처럼, 강릉 모래사장 위에 '조화롭게' 널브러져 있었다.

아래 보이는 최옥영 작가의 '소통의 분화구'는 저편에 묻어뒀던 Burning man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과, 어릴적 내가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이름모를 한 영화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켰다. 그것은 내 어린 시절의 판타지였다.


"자연=시간", 어쩌면 물리와 시간이 동일시될지도 모르겠다. 공기와 중력, 물의 교향곡,, 아름답다.

어릴적의 판타지가 완벽하게 연주되었다.

주변의 모래 덩어리가 소통의 분화구를 움켜쥐고 있는 것 같았다.

바다와 하늘, 모래와 작품의 색이 정오의 햇빛에 비추어 한데 아름답게 빛났다.

작품을 불태우는 의식(ritual)까지 작품 자체로 바라보는 파이어 아트, 나는 버닝맨에 가고싶다.



이 작품은.. 진짜 미쳤다.



컴퓨터 그래픽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복잡한 곡면으로 이루어진 물체를 다각형으로 단순화해 나타내는 폴리곤 아트(polygon art)가 모니터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다. 빙산 조각 위에 따내려오는 호랑이. 사실, 방금까지 사자인줄 알았다.




널려진 작품 중 '가장 실제 형태를 그대로 옮겨 놓은'? '실천적인'? '구상적인'? 작품이었다. 여긴 곧 산불이 나겠구나. 우리같은 화전민은 산에 불을 놓아 식물과 동물이 쓰러져 토양이 되면 그걸 양분으로 삼아 농작물을 기르고 생계 유지 수단으로 활용한다.

재미있었던 작품. 놀이터 같았다. 들어가고 싶었다. 허리가 불편하지 않은 친구와 같이 갔다면 들어가서 모래성을 지었을 것이다. 엄마는 나를 키우느라 허리에 많은 무리를 주셨다.


바다 위에 떠있는 등대에서 등대지기를 하려면 멀미에 정말 강해야겠다.

다른 전시와 구별되는 재밌는 점은, 대형 설치미술 작품을 둘러싼 빨랫줄 같은 울타리를 제외하고는 작품의 훼손을 막기 위한 적극적인 금지책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간 온습도를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관람객이 지나치게 접근하면 경보기가 작동하는 미술관에 익숙해져 있었다.
'어차피 불 타 없어질' 작품의 유한성과 무소유의 개념을 함께 떠올리게 되었다.

시청 옥상에도 오륜이 설치되어 있었다. 귀여웠다.

평창 올림픽 플라자 현대자동차 파빌리온
